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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고행으로 유명한 정조대왕 능행차 본행렬] 사또 옷 입고 짚신 신고 8km 걷기

2019.10.05.토. 정조대왕 능행차 본행렬.

제법 쌀쌀해진 가을 바람을 맞으며 오랜만에 새벽 지하철을 탔다. 바로, 정조대왕 능행차에 참가하기 위하여!ㅎㅎ 
지난 주 행차 관련 현장 교육을 듣고 나서 한복을 입고 행차를 한다는 것에 대한 요상한 기대감으로 한 주를 보냈다. 그래서인지 눈도 금방 떠지고 새벽시간이지만 발걸음도 가벼웠다.

접수후 받는 참가증! 두근두근 기대감 증폭ㅎㅎ

친구와 함께 본행렬 접수처에서 오전 7시에 만나 접수를 하고 긴긴 기다림 끝에 내가 입을 한복을 받았다.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시민 참여자만 있는 게 아니라 수당을 받고 참여하시는 분, 자원봉사자들도 계시고 행사를 진행하는 현장 진행 스태프도 많이 계셔서 굉장히 주변히 혼잡하다. 하지만 그것또한 이런 시민 참여 행사의 즐거움이니까 ㅎㅎ 접수 후 진행 순서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다. 접수 -> 간단한 도시락 -> 본인이 어떤 역할을 할 지 랜덤으로 스티커를 받음 -> 해당 역할 한복 받음 -> 행차 배열에 맞는 순서에 서서 환복 (환복실 따로 없음) 환복 후, 알아서 약간의 포토타임 ㅋㅋ -> 본인 옷가지 트럭에 실기 -> 행차 시작!

본인 역할 및 행차 배열 번호가 적힌 스티커

 사람이 워낙 많고 큰 행사이다보니 어수선한 건 당연하당.. 행사 진행에 있어 스태프 분들이 시민 참여자들을 많이 도와주시려고 해주셔서 감사했다!! 아침식사도 미리 주시고..ㅎㅎ 다만 불평 불만이 많은 아주머니 무리가 계셨는데,,, 아니 편안하게 걷고 싶으시다면 왜,, 신청하셨나요,,, 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본인이 본인 짐을 옮겨 트럭에 실는 건 당연한데, 스태프들이 하면 되는 일을 왜 본인이 해야하냐며 불평하는 모습은...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스태프분들이 본인들의 짐꾼인 줄 아셨던 모양이다. 이상한 선민의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본인을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류. 보고 있자면 그저 안타깝다. 

말을 탄 남자.. 말을 실제로 코앞에서 보니 좀 무섭기도 하더라

진정한 행차는 8시 반 즈음 시작되었다. 안국역에서 용산역 근처 한강대교로 출발! 본행렬은 실제 정조대왕 능행차를 재현하는 행렬이기 때문에 정말 조선시대 사람처럼 핸드폰을 사용하거나 물병을 들고 있거나 해서는 안된다. (물론 몰래몰래 사용하기는 했다.ㅠㅠ) 행렬이 시작하고 한 시간은 정말 신나게 걸었다. 나는 사또 옷을 입었기에 사또 모자가 조금 무거워서 힘이 들기는 했지만, 언제 또 이런 옷을 입어볼까 싶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ㅎㅎ 안국역에서 광화문 시내를 걸을 때에는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 재미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ㅋㅋ 핸드폰으로 행렬을 찍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싶었지만 용기가 부족해 실패 ㅎㅎㅠ 

환복 후 신발ㅋㅋ 목화와 짚신

정조대왕은 세종대왕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룬 왕으로 평가되는데, 이러한 행차 하나에도 백성을 위한 많은 고민을 담으셨던 듯하다. 정조는 행행 중에 천 개가 넘는 상언(백성이 임금을 만나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것)과 격쟁(행차 중에 징을 치고 나와 왕에게 직접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것)을 처리하였다. 게다가 대규모 인원이 이동하기 때문에 행차에는 자연히 길을 닦고 다리를 짓거나 보수하는 등 도로 재정비의 효과가 있었고,  많은 군사들이 함께 행차했기 때문에 수도권의 방위 체제를 점검하고 군사를 훈련하는 기회로도 활용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날 재현 행차에 말 100필과 기수분들이 함께 하셨는데, 아마 그 분들이 이러한 군사들의 우두머리를 연기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말이 많아서 말똥 냄새는 행차 진행 내내 함께 한다^^)

정조대왕 능행차 당시 모습?

또한 왕궁을 벗어나 현지에서 지방의 인재를 수시로 등용하기도 하셨다고 하니, 정조대왕이야말로 행차 중에도 국방과 복지, 청년 일자리까지 생각한,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ㅎㅎ 신하들의 상서를 통해서가 아닌 백성 눈을 보고 소통하려고 했던 왕. 조국과 검찰 개혁으로 민심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는 신문 기사를 매일 접하는 요즈음, 눈과 귀를 열어 모든 백성의 소리를 듣고 둘로 나뉜 민심의 접합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과연 찾을 수 있을는지. 정당이 아닌 시민을 위한 정치를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조금 답답도 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신하들을 거느리고 수원 화성에 있는 현륭원을 참배하였다. 재위 기간동안 66회의 행행을 했고 아버지 묘소 참배가 그 절반을 차지했다고 하니 훌륭한 왕인 동시에 지극한 효자이셨던 모양이다. 다만 왕을 쫓아 행렬에 참가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탄식 소리가 상상이 간다ㅎㅎㅎ.. 그때는 비포장 도로에 불편한 한복과 짚신을 신고 걸어야 했으니 더 힘들었겠지..? 왕의 명령이니 참여하지 않을 수도 없고 말이다.

조선시대와 21세기가 혼재하는 듯한 묘한 기분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 행사는 굉장히 '고증'에 신경을 많이 써서 한복도 내복과 신발까지 완벽하게 준비해주셨고, 행차 대열 순서, 말의 배치 (말 100필의 존재 자체가 이미 대단)도 그대로 재현한다. 본래는 행차로도 정조대왕이 행차하신 대로 강변북로까지 행차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너무나 많은 경찰 인원이 필요한데다 교통 혼잡으로 시민 불편이 굉장히 심해서 (네이버 실시간 검색순위 1위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생략한다고 ㅎㅎ


능행차의 전체적인 소감을 말해보자면, 확실히 힘들긴 하다! 마라톤 10km를 한시간 반 안에 완주해 본 사람으로, 8km 행렬을 어렵지 않게 보았는데 여러가지 요소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1) 인원이 굉장히 많아 혼잡하여 에너지 소모가 있다.
2) 상당한 무게인 총이나 칼, 깃발을 들고 행진해야 하며 (원래 시민 참여자는 안 든다고 교육 때 말씀해 주셨는데, 현장에서 갑자기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당황한 건 사실이다.)
3) 고증을 위하여 짚신이나 목화를 신고 걸어야한다.
4) 접수부터 행차까지, 행차 종료 후 환복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그래서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참여할 수 있는 분들만 참여하시기를 바란다. 나같은 경우는 행차 마지막 한 시간이 정말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내년에 또 참가하고 싶다. 왜냐하면...

1) 정말 좋은 추억이다. 이렇게 멋진 한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을 기회가 이것말고 또 있을까?
2) 차도를 점령하며 걸을 수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 8차선 도로에서 두 세개의 차선을 밟고 행차하게 되는데, 느낌이 꽤 묘하다.
3) 사은품도 있다! 정성스러운 감사장과 무릎 담요, 보조배터리, 에코백까지! 덕분에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4) 연예인이 된 것 같다ㅋㅋㅋㅋ 왜냐하면 사람들이 무진장 쳐다본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물론 행차를 찍는 것임) 나를 찍으려고 하는 게 왠지 짜릿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5) 고되기 때문에 뿌듯하다. 해냈다는 뿌듯함! 이거 해본 사람만 안다.
6) 운동이 된다. 한복이 덥기도 하고, 날씨가 푸근하기도 해서 아주 약간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한 듯한 느낌이다. 
7) 사극 엑스트라가 된 기분은 덤


나는 내년에 또 참가할 예정이다. 그 때는 예쁘게 화장하고 가야지. 올해는 새벽에 나가면서 귀찮아서 선크림만 발랐더니 한복을 입고도 별로 예쁘지가 않았다,,,,,,, 하하하,,,,,,ㅠㅠ 다음엔 더 예쁘게 사진 찍어야지...하는 다짐을 해봅니다.
아무쪼록 여러 가지로 많이 배웠고, 느꼈고, 경험한 하루 :)